하나님 앞에서 성도는(시99:1-9) 20201018 > 설교문 | 예수사랑교회 (2024)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시99:1-9)    Â2020. 10. 18

시편 99편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ë–í•˜ì‹ 분인가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는 여러 가지 내용을 ë‹´ê³ ìžˆë‹¤. 여호와 하나님은 ê±°ë£©í•˜ì‹ ë¶„ì´ì‹œë‹¤. 하나님의 다스리심에는 ì˜ë¡­ê³ ì˜ì›í•˜ë‹¤. 그런 내용을 ë‹´ê³ ìžˆëŠ” 시편 99편은 하나님의 주권ìì¸ 통치를 찬양하는 ì‹ì•ì‹œ(神政詩) 중의 한 편이다. 95-100편까지를 ì‹ì•ì‹œë¼ê³ 한다.Â

여호와께서 다스리ì‹ë‹¤

만민으로 하여금 그의 앞에서 떨게 하ì‹ë‹¤

구룹 사이에 좌ì•í•˜ì‹ë‹¤

땅이 흔들리게 하ì‹ë‹¤

시온에 계ì‹ë‹¤

위대하시다

ëª¨ë“ ë¯¼ì¡±ë³´ë‹¤ 높으시다

주의 이름이 í¬ê³ ë‘ë¤ìš°ì‹œë‹¤

거룩하시다(3, 5, 9)

공의를 견ê³í•˜ê²Œ 세우ì‹ë‹¤

ì•ì˜ì™€ 공의를 행하ì‹ë‹¤

간구하면 응답하ì‹ë‹¤

구름 기둥 가운데서 말씀하ì‹ë‹¤

행한대로 갚으ì‹ë‹¤

용서하ì‹ë‹¤

간구하면 응답하ì‹ë‹¤

구름 기둥 가운데서 말씀하ì‹ë‹¤

행한대로 갚으ì‹ë‹¤

용서하ì‹ë‹¤

이와 같은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Â

자, 그러면 ê±°ë£©í•˜ì‹ ì—¬í˜¸ì™€ 하나님 앞에서 성도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í•ê¹Œ. 시편 99편의 기록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ì‹ì˜ 믿음에 대하여 ê³ë°±í•˜ê³ 있다. 시편 기록자의 ê³ë°±ì´ 오늘 우리 각 사람의 ê³ë°±ì´ ë ìˆ˜ 있기를 바란다.Â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으로 간구하여야 한다.

6ìˆì— ë³´ë©´ 모세, ì•„ë¡ ê·¸ë¦¬ê³ ì‚¬ë¬´ì—˜ì˜ 이름이 등장한다. 모세와 아ë¡ì€ 형ìœì´ë‹¤. 하나님은 호ë™ì‚°ì˜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것과 같은 환상 앞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ê·¸ë¦¬ê³ ì´ì–´ì„œ 오래도록 만나지 ëª»í•˜ê³ ì§€ëƒˆë˜ 형 아ë¡ì„ 만나게 하셨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내용이지만 3500년 ì„에 80평생을 떨어ì¸ì„œ 지내던 형ìœë¥¼ 서로 만나 형ìœìž„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 ì‹ë¹„에 가깝지 않나. 모세의 형 아ë¡ì€ 모세보다 세 살 위의 형이다. 하나님은 ì€ë“¤ 형ìœë¥¼ 부르셔서 ìœì‚¬ìž¥ 가문이 되게 하셨다. 모세도 ìœì‚¬ìž¥ì´ê³ 형 아ë¡ë„ ìœì‚¬ìž¥ì´ë‹¤. 하나님은 아ë¡ê³¼ 그의 아들들과 ê·¸ 후손들을 거룩한 ìœì‚¬ìž¥ 가문으로 부르셔서 구별하셨다. 이는 일방ìì¸ 하나님의 ì„택이며 부르심이다. 감사한 ì¼ì´ê³ ë³µëœ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나의 기도를 ë“¤ìœ¼ì‹œê³ ë‚³ê²Œ í•˜ì‹ ì•„ë“¤ 사무엘은 원래 ìœì‚¬ìž¥ 가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들을 임ì‹í•˜ê¸° 이ì„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다.“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ë“œë¦¬ê³ ì‚­ë„ë¥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ê²ë‚˜ì´ë‹¤.”(삼상1:11)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에브라임 사람이다. 남편 엘가나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한나 대ì‹ì— 브닌나라는 새 부인을 맞아들여서 자식을 낳았다. 한나는 본 부인이지만 자식이 없는 것이 늘 한이었다. 그런 한나의 기도를 ë“¤ìœ¼ì‹œê³ í•˜ë‚˜ë‹˜ì€ 사무엘을 ì„물로 주셨다. ê·¸ë‡ê²Œ 기도 응답으로 태어난 사무엘이 어ë¤ì„œë¶€í„° 실로에 있는 성막에 보내ì¸ì„œ 자라났다. ê·¸ 당시의 ìœì‚¬ìž¥ì€ 엘리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에게 말씀하시지 ì•Šê³ ì–´ë¦°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셨다. 어느 ë‚ ë°¤ 중에 있었던 일이다. ê·¸ ë‚ ì´í›„ë¡œ ìœì‚¬ìž¥ 엘리도 어린 사무엘을 주목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셔서 평생í†ë¡ 하나님의 ìœì‚¬ìž¥ì´ìš” ì„지자요 사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붙들어 쓰셨다.Â

우리가 잘 아는대로 모세와 아ë¡ê³¼ 사무엘 ì€ë“¤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기도의 비중과 중요성을 깨달아 ì•Œê³ ê¸°ë„í•˜ë˜ ìœì‚¬ìž¥ì´ìš” ì„지자요 말씀의 사람들이었다.Â

사무엘상 2장 26ìˆì— ë³´ë©´ “아이 사무엘이 ìì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â€ë¼ê³ í•˜ì˜€ë‹¤.

사무엘상 3장 19ìˆì— ë³´ë©´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í•˜ì‹œë‹ˆâ€ë¼ê³ í•˜ì˜€ë‹¤. ê·¸ 다음 ìˆì¸ 20ìˆì— ë³´ë©´ 온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ê·¸ 시대에 ì„지자로 세우심을 ì•Œì•˜ë‹¤ê³ í–ˆë‹¤. 사무엘상 3장 21ìˆì— ë³´ë©´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â€ê³ í•˜ì˜€ë‹¤.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임하셨다는 뜻이다.Â

ê·¸ 시대는 사사시대 말기였다. 격동기였다. 블ëˆì…‹ì´ 쳐들어 와서 실로에 있는 성막의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갔다. ìœì‚¬ìž¥ 엘리의 악을 행하며 부ì•í•˜ê²Œ 출입하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ëˆì…‹ 군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ê·¸ 때 ìœì‚¬ìž¥ 엘리에 연세가 98세였다. ê·¸ 당시 엘리 ìœì‚¬ìž¥ì€ 앞을 못 보았다. 엘리는 사사이며 ìœì‚¬ìž¥ì´ 된지 40년이었다. 엘리는 두 아들이 ì„쟁에서 죽임을 당한 비보(悲å±)를 ë“£ê³ ì˜ìžì—ì„œ 뒤로 넘어ì¸ì„œ 숨을 거두었다. 악이 가득하던 사사 시대 말기의 불행한 역사를 대변하는 사건이다. 법궤는 블ëˆì…‹ì— ë¹¼ì•—ê¸°ê³ ì‚¬ì‚¬ì´ë©° ìœì‚¬ìž¥ì´ì—ˆë˜ 엘리는 불행하게 목숨을 거두었으니 말이다.Â

그런 격동기에 하나님이 들어 ì“°ì‹ ì‚¬ì‚¬ìš” ìœì‚¬ìž¥ì´ìš” ì„지자였던 인물이 사무엘이다. 사무엘 상 7장에 ë³´ë©´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였다. “만일 너희가 ì„심으로 여호와께 돌아 오ë¤ê±°ë“ 이방 ì‹ë“¤ê³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ìœê±°í•˜ê³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ëˆì…‹ 사람의 손에서 ê±´ì¸ ë‚´ì‹œë¦¬ë¼.”(삼상7:3)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ë²„ë¦¬ê³ ì—¬í˜¸ì™€ë¥¼ 섬기는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ì„지자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모았다. 거기서 기도 운동을 펼쳤다. 물을 길어다 ë¶“ê³ ì¢…ì¼ 금식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â€í•˜ê³ ê³ë°±í•˜ë©° 회개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블ëˆì…‹ 군대가 다시 쳐들어 온다는 소식이 들ë¸ë‹¤.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ê¸°ë„í•´ë‹¬ë¼ê³ ìš”ì²­í•˜ì˜€ë‹¤. 사무엘은 ì– ë¨¹ëŠ” 어린 양 하나를 취하여 온ì„í•œ 번ìœë¥¼ 하나님 앞에 드ë¸ë‹¤. ê·¸ë¦¬ê³ ì´ìŠ¤ë¼ì—˜ì„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ë“¤ìœ¼ì‹œê³ ì‘ë‹µí•˜ì˜€ë‹¤. 사무엘 상 7장 9ìˆì— 나오는 내용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ì‹ë‹¤.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ì‹ë‹¤. 번ìœë¥¼ 드리며 하나님께 ê¸°ë„í• ë•Œì—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나님이 큰 우ëˆë¥¼ 발하셔서 이스라엘을 치ë¤ê³ 달ë¤ë“œëŠ” 블ëˆì…‹ 군대를 어지럽게 하셔서 패하게 하셨다.

사무엘은 ê·¸ ì„쟁 승리의 기념으로 하나님 앞에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ì„¸ìš°ê³ â€˜ì—ë²¤ì—ì…€â€™ì´ë¼ê³ ì´ë¦„ 붙였다. ‘에벤에셀’이란 “도움의 돌”이란 뜻이다. 빼앗겼던 법궤도 되 찾아 ì˜¤ê³ ì‚¬ë¬´ì—˜ì´ 나라와 백성들 통치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온 땅에 평화를 주셨다. 빼앗겼던 성읍들도 되 찾게 되었다.

모세, 아ë¡, 사무엘 ì€ë“¤ 모두의 특징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던 기도의 사람들이었다는 ìì´ë‹¤. ì€ë“¤ì€ 모두가 다 ìœì‚¬ìž¥ì¼ 뿐만 아니라 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ê¸°ë„í•˜ê³ ê°„êµ¬í•˜ëŠ” 기도의 사람들이었다.Â

ë²ë“œë¡œ ì„ì„œ 2장 9ìˆì— ë³´ë©´ ë²ë“œë¡œ 사도는 “너희는 íƒí•˜ì‹ ì¡±ì†ì´ìš” 왕 같은 ìœì‚¬ìž¥ë“¤ì´ìš”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ìœê°€ 된 ë°±ì„±ì´ë‹ˆâ€ë¼ê³ í•˜ì˜€ë‹¤. ê·¸ 목ìì€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어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í•˜ì‹ ì´ì˜ 아름다운 덕을 ì„포하게 í•˜ë¤ í•˜ì‹¬ì´ë¼.”(벧ì„2:9하)ê³ í•˜ì˜€ë‹¤.Â

ê·¸ë‡ë‹¤. 우리 모두는 íƒí•˜ì‹ ì¡±ì†ì´ìš” 왕 같은 ìœì‚¬ìž¥ì˜ 마음가짐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어 ê¸°ë„í•˜ê³ ê°„êµ¬í•˜ì—¬ì•¼ 한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기 때문이다.Â

예수께서 이 땅에 ê³„ì‹ ë™ì•ˆì—ë„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여야 í• ê²ƒì„ 강조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ì‹ì´ ë‚마다 계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하셨다. 그러므로 기도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다. 기도는 살아있는 동안에 계속하여 숨을 쉬는 것처럼 끊임이 없이 계속해야 하는 ì˜ì í™œë™ì´ë‹¤. 바ë¹ë„ ê¸°ë„í•˜ê³ ê¸‰í•´ë„ 기도해야 한다. 바쁘면 바ììˆ˜ë¡ 더욱 더 ê¸°ë„í•˜ê³ ê¸‰í•˜ë©´ 급í•ìˆ˜ë¡ 더욱 더 기도를 우ì„해야 한다.Â

지난 해 봄에 소풍을 갔던 기자촌 공원까지 ì–´ìœ ë°¤ì¤‘ì— 걸었다. 가로등이 대낮같이 ì¼œì¸ ìžˆê³ ìž”ë””ë„ 말끔하게 깎여 있었다. 당장 교우들과 함께 다음 주일에라도 가을 소풍을 ê°€ê³ ì‹¶ì„ ì•ë„ë¡œ 산뜻한 가을의 ë°¤ 바람이 얼마나 상큼했는지 모른다.“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ìžˆìœ¼ë¤ í•˜ë‚˜â€í•˜ëŠ” 442장 찬송 3ìˆ ê°€ì‚¬ê°€ 생각났다.Â

6ìˆ ëì—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하는 말씀을 ë¯¿ê³ ê¸°ë„í•˜ìž. 마스크를 벗지 못해 답답한 나ë‚이지만 기도하면 응답하ì‹ë‹¤ëŠ” 소망을 ê°–ê³ ê¸°ë„ 생활을 계속하는 은혜로운 계ìˆì´ 되기를 축원한다.

ì•ì˜ë¥¼ 사랑하며 증거와 율례를 지켜야 한다.

4ìˆì— ë³´ë©´ ‘ì•ì˜â€™ 혹은 ‘공의’라는 표현이 두 차례씩 반복된다. 우리 말의 번역에 ì•ì˜ì™€ 공의의 차이를 구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ê·¸ 말이 ê·¸ 말 같다. 그러나 원어인 히브리 성경에서 쓰인 두 단어는 ‘미쉬파트’라는 단어와 ‘체다카’라는 단어이다.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판결’, ‘판단’, ‘재판’이란 뜻이다. ê·¸ë¦¬ê³ â€˜ì²´ë‹¤ì¹´â€™ë¼ëŠ” 단어는 ‘의로움’혹은 ‘옳바름’을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판단과 판결은 ì˜ë¡­ê³ ì˜¬ë°”ë¥´ì‹œë‹¤.는 뜻이다. ê·¸ëŸ¬í•˜ì‹ í•˜ë‚˜ë‹˜ì´ 구름 기둥 가운데 임재하셔서 말씀하시는 광경은 ìž¥ì—„í•˜ê³ ì—„ìœ„ë¡œì›€ì„ 느끼게 한다. 모세나 아ë¡ì´ë‚˜ 사무엘의 특징은 ì€ë“¤ì—ê²Œ ë§ì”€í•˜ì‹ ì—¬í˜¸ì™€ì˜ 증거와 율례를 지켰다. ê·¸ë‡ì§€ 않나. 우리가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아도 ê·¸ 깨달아 알게 된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ê²ëŠ”ê°€.Â

눈여겨 ë³´ë©´ 시편 99편은 1-3ìˆ, 4-5ìˆ ê·¸ë¦¬ê³ 6-9ìˆì˜ 세 부분으로 ë‚˜ëˆ„ì–´ì¸ ìžˆë‹¤. 어떻게 알 수 있나. 3ìˆê³¼ 5ìˆê³¼ 9ìˆ ë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ê±°ë£©í•˜ì‹ ë¶„ì´ëž€ 말인가.Â

다시 1-3ìˆì„ ë³´ë©´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ê±°ë£©í•˜ì‹ í•˜ë‚˜ë‹˜â€ì— 대하여 ì°¬ì–‘í•˜ê³ ìžˆë‹¤. 4-5ìˆì€ “공의와 ì•ì˜ë¥¼ 견ê³í•˜ê²Œ ì„¸ìš°ì‹œê³ í–‰í•˜ì‹œëŠ” 하나님”에 대하여 ì°¬ì†¡í•˜ê³ ìžˆë‹¤. 마지막 부분인 6-9ìˆì€ “기도에 ì‘ë‹µí•˜ì‹œê³ ì£„ë¥¼ 용서하시며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송축하며 하나님을 ë†’ì´ê³ ìžˆë‹¤.Â

ê·¸ë‡ë‹¤. 하나님은 공의와 ì•ì˜ì˜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앞과 뒤가 다르다. 사람은 여기서 이 ë§í•˜ê³ ì€ê¸°ì„œ ì€ ë§í•˜ê¸°ë„ 한다. 사람은 아침에 ë‹¤ë¥´ê³ ì€ë…ì— 또 다르다. 아담과 하와를 보라. 에덴 동산에서 ë²”ì£„í•˜ê³ ë™ì‚° 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들을 찾아 ì˜¤ì‹ í•˜ë‚˜ë‹˜ì´ 물으시는 질문 앞에 ê±°ì§“ë§í•˜ê³ ë˜ 거짓말하였다. 서로 책임을 ì„ê°€í•˜ê³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은 공의와 ì•ì˜ë¡œ 세상을 다스리ì‹ë‹¤. 낮과 ë°¤, 여름과 겨울, 봄과 가을의 변화 가운데 하나님의 ê³µì˜ë¡œìš°ì‹ ì†ê¸¸ì´ 있다.Â

우리는 여기 시편 기자가 ê±°ë¡í•˜ëŠ” 모세와 아ë¡ê³¼ 사무엘을 안다. ë¬¼ë¡ ëª¨ì„¸ì—ê²Œë„ 부족함이 있었다. 아ë¡ì—ê²Œë„ 금송아지를 만들어 ë†“ê³ ë°±ì„±ë“¤ 앞에서 금송아지가 ì€ë“¤ì„ ì•êµ½ì—ì„œ 이끌어 낸 ì‹ì´ë¼ê³ ìˆí•˜ê²Œ 하는 등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실망스런 모습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 그런 아ë¡ì´ë¼ë„ 붙드셔서 ê·¸ 죄를 ìš©ì„œí•˜ì‹œê³ ê·¸ 허물을 가리우셔서 ìœì‚¬ìž¥ìœ¼ë¡œ 존귀하게 쓰셨다. 하나님의 공의와 ì•ì˜ê°€ ì„¸ì›Œì¸ ê°€ëŠ” 민족으로 삼아 가셨다. 하나님의 증거와 율례를 행하는 백성들로 연단해 가셨다.Â

ê·¸ë‡ì§€ 않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ì€ë“¤ 믿음의 조상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생의 우여곡ìˆì´ 있었는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을 불같은 시험으로 연단하셔서 ì•ê¸ˆë³´ë‹¤Â 더 귀한 믿음의 조상들로 자리매김하도록 이끌어 가셨다.Â

ê·¸ë‡ì§€ 않나. 7ìˆ ë§ì”€ì˜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라는 장면을 묵상하다 ë³´ë©´ 출ì•êµ½ê¸° 33장의 내용이 생각난다. 거기에 ë³´ë©´ 9ìˆ ì´í•˜ì—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ë‚´ë¤ íšŒë§‰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ëª¨ë“ ë°±ì„±ì´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ë³´ê³ ë‹¤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ìŠì€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ë–나지 아니하니라.”(출33:9-11)는 말씀이 있다.Â

이런 장면들을 묵상하다 ë³´ë©´ 너무나 그림을 보듯 ì„명한 ê·¸ 당시의 하나님의 임재 장면이 생각나지 않나. 이 ì„염병의 시대가 다 잦아 들기까지 서로 간의 사이는 거리를 ë‘ê³ ëŠ˜ 대하되 마음만은 더욱 더 ê°€ê¹Œì›Œì¸ ê°€ëŠ” 성도들 간의 마음의 연합이 있어야 í• ê²ƒì´ë‹¤. 주님과도 말씀과 기도로 ìì 더욱 더 주님과 가깝게 대하는 ì‹ì‹¤í•œ 동행의 은총이 있어야만 í• ê²ƒì´ë‹¤.Â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ê³µì˜ì´ê³ ë¬´ì—‡ì´ 여호와의 ì•ì˜ì¸ê°€. 4ìˆì— ë³´ë©´ “주께서 야곱에게 ì•ì˜ì™€ 공의를 í–‰í•˜ì…¨ë‹¤â€ê³ í•˜ì˜€ë‹¤. 여기서 말하는 야곱은 창세기의 야곱 자ì‹ì´ê¸°ë„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일컫는 말씀이다. ê·¸ë‡ì§€ 않나. 우리가 아는대로 야곱의 생ì•ëŠ” ê·¸ 이름처럼 ë¬¸ìœ íˆ¬ì„±ì´ì˜€ë‹¤. 아버지 이삭을 대하는 태도도 ê·¸ëŸ¬í•˜ì˜€ê³ í˜• 에서를 대하는 자세도 그러하였다. 그런 부족함이 ë§Žê³ ë„ˆë¬´ë‚˜ë„ 인간ìì´ê³ 욕심과 투지와 지나친 경쟁심과 질투와 시기심이 이글 이글 타오르던 야곱을 하나님은 평생í†ë¡ ì•ê¸ˆì„ 다듬듯이 다듬어 가셨다. 루스 광야에서 돌ë²ê²Œë¥¼ ë°°ê³ ìžì„ 청하던 밤이 그러하였다. 이십 년 세월이 흐른 처가살이를 ì²­ì‚°í•˜ê³ ê³í–¥ì„ 향해 가던 중간에 압복강가에서 밤새워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하던 ê·¸ ë‚ ë°¤ë„ 그러하였다. 하나님은 여ì„히 부족함이 많은 야곱을 사랑하셨다. 그래서는 ê·¸ 때 ê·¸ 때마다 야곱을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성결의 사람, 은혜의 사람, ê±°ë£©í•˜ì‹ í•˜ë‚˜ë‹˜ì˜ 보좌 앞으로 한 걸음씩 ìì 다가서는 언약의 조상으로 다듬어 가셨다.

올해 처음으로 시속 40키로 ìœí•œ 구역에서 51키로의 속도로 달린 것이 해당 지역 CCTV에 찍혀서 교통 ë°œì„ ê¸°ê¸ˆì„ 납부하였다. 속도 ìœí•œì´ 무엇인가. ì‹ì•™ 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총알같이 빨리 ë‹¬ë¤ ê°€ëŠ” 것만을 원하지 않으ì‹ë‹¤. 때로는 속도를 줄이기를 원하ì‹ë‹¤. 일ì•í•œ 구간에서는 ê·¸ ìœí•œëœ 속도를 ìœì§€í•´ì„œ 천천히 가길 원하ì‹ë‹¤. 내가 ê¸‰í•˜ë‹¤ê³ ì†ë„ë¥¼ ë‚¸ë‹¤ê³ ë‹¤ ë ì¼ì´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과 삶의 속도를 주목하ì‹ë‹¤. 7ìˆì˜ 말씀대로 우리가 주의 증거와 율례를 ì£¼ëª©í•˜ê³ ê·¸ 증거와 율례를 지키며 생활해야 하는 이ìœëŠ” 그것이 복된 길이요 영생의 길이요 하나님의 자녀다운 길이기 때문이다.Â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복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한다.

복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ì¦ê±°ì›Œí•˜ê³ ê·¸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며 살아가야 한다.Â

그것이 번영의 길이며 형통의 길이며 여호와께서 ì˜ë¡­ë‹¤ê³ ì¸ì•í•˜ì‹œëŠ” 길이다.Â

공의를 견ê³í•˜ê²Œ ìƒˆìš°ì‹œê³ ì•ì˜ë¥¼ 행하시는 여호와 안에서 주의 말씀이 증거가 ë˜ê³ ì£¼ì˜ 말씀인 사랑의 율례를 준행하며 살아가는 동행의 은총이 늘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Â

하나님을 ë†’ì´ê³ ê·¸ 성산에서 예배하여야 한다.

3ìˆì— ë³´ë©´ “너희는 주의 í¬ê³ ë‘ë¤ìš´ 이름을 찬송í•ì§€ë‹ˆâ€ë¼ê³ 하였다. 5ìˆì—ì„œëŠ”“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í•ì§€ì–´ë‹¤â€ë¼ê³ 하였다. 9ìˆì— ë³´ë©´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ê³Â ê·¸ 성산에서 예배í•ì§€ì–´ë‹¤â€ë¼ê³ 하였다.Â

하나님을 높이는 길은 하나님의 í¬ê³ ë‘ë¤ìš°ì‹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ë¯¿ê³ ì„¬ê¸°ê³ ë”°ë¥´ë¤ëŠ” 성도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ê²½ì™¸í•˜ê³ ì°¬ì†¡í•˜ì—¬ì•¼ 한다. ê·¸ë‡ì§€ 않나. ëª¨ë“ ì°¬ì†¡ì€ 하나님을 ë†’ì´ê³ ê²½ë°°í•˜ëŠ” 찬송이어야 한다.Â

27장

ë¹›ë‚˜ê³ ë†’ì€ 보좌와 ê·¸ 위에 앉으ì‹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 없는 자비를

68장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오 하나님 우리의 대주재시니

주 하나님 이름을 함께 높이며

70장

â€œë§Œìœ ì£¼ 하나님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â€œë†’ìœ¼ì‹ í•˜ë‚˜ë‹˜ 우리를 구하니 í•ëë£¨ì•¼.....

ìžì‹œ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ìœ„ë¡œí•˜ê³ ì°¬ì†¡í•˜ëŠ”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그런 찬송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ë“œë†’ì´ê³ ì—¬í˜¸ì™€ì˜ ì„능하심을 ì°¬ì–‘í•˜ê³ ê²½ë°°í•˜ëŠ” 찬송이 ì°¸ 찬송인 것이다.Â

과거에 목사들끼리 버스를 íƒ€ê³ ìˆ˜ë¨íšŒë¥¼ ë–났다. 버스 안에서 사회 보는 목사가 노래를 시켰다. 어느 연세 ë“œì‹ ëª©ì‚¬ë‹˜ì´ 마이크를 받아 들더니Â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ê³Â

ì€ ì²œì‚¬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성자 ì„±ë¹ ì•„ë©˜â€

하ê³Â 찬송가 1장을 불ë€ë‹¤.

그게 ì˜¤ížˆë¤ ë¯¸ìŒì„ 찡하게 í•˜ê³ ì€í˜œê°€ 되었다. ê¼­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나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 오니”를 불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ê¼­ 노래방을 들락거ë¤ì•¼ë§Œ 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 요즘 온 나라가 트롯트 음악으로 뒤 덮혀 있는 듯하다. ìœí–‰ê°€ëŠ” ëŒê³ ëˆë‹¤.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ì°¬ì†¡í•˜ê³ ê·¸ 발등상 앞에 ì—Žë“œë¤ ê²½ë°°í•˜ê³ í•˜ë‚˜ë‹˜ì„ ë†’ì´ê³ ì˜ˆë°°í•˜ëŠ” 일은 영원한 것이다. 찬송 í•˜ê³ ë˜ ì°¬ì†¡í•˜ê³ ì˜ˆë°°í•˜ê³ ë˜ 예배하여도 늘 ìƒˆë¡­ê³ ëŠ˜ ê¸°ì˜ê³ ëŠ˜ ê°ì‚¬í•˜ê³ ëŠ˜ ë³µë˜ê³ ëŠ˜ 은혜로 채워지는 것이다.Â

이 한 주간도 새벽과 ë°¤ 계속되는 기도와 영상 말씀 부흥 성회를 통해서 열매 í’ì„±í•˜ê³ ì°¬ì†¡ì´ 넘치는 ì„±ë¹ ì¶©ë§Œí•œ 가을ë‚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시99:1-9)         20201018 > 설교문 | 예수사랑교회 (2024)

References

Top Articles
Latest Posts
Article information

Author: Duncan Muller

Last Updated:

Views: 6376

Rating: 4.9 / 5 (79 voted)

Reviews: 86% of readers found this page helpful

Author information

Name: Duncan Muller

Birthday: 1997-01-13

Address: Apt. 505 914 Phillip Crossroad, O'Konborough, NV 62411

Phone: +8555305800947

Job: Construction Agent

Hobby: Shopping, Table tennis, Snowboarding, Rafting, Motor sports, Homebrewing, Taxidermy

Introduction: My name is Duncan Muller, I am a enchanting, good, gentle, modern, tasty, nice, elegant person who loves writing and wants to share my knowledge and understanding with you.